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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이야기, 국내괴담/기묘한이야기

(기묘한이야기) 금수저

by 세모세모뚱이 2023. 9.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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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대학교 같은 과에 재학 중인 윤주는 명품에 대한 집착이 심한 거 같다.

주변에서 '금수저다, 금수저다' 말은 많이 들었지만, 하고 다니는 꼬락서니를 보면 저렇게 치장을 해대면 집안에 남아나는 것이 없을 거 같은 모양새였다.

"이번에 또 샀다고? 그거 가방 3천만원짜리 아니야?"

"흠.. 그래? 가격을 안 보고 사서... 그냥 예쁘길래 집어들고 카드 긁었는데 3천만원짜리라고 이게? 그 정도까지는 아닌 거 같은데.... 엄마가 그냥 사라고 그랬거든..."

이렇게 씀씀이가 장난이 아니다보니 윤주의 주변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금수저라는 것을 감추고 싶지 않은 듯 명품을 걸치고 성격 자체도 조용한 편이 아니었고, 시끄럽게 나서는 편이다보니 윤주 주변에는 늘 사람이 많았다.

뒤에서는 욕하지만 앞에서는 아첨하는 애들하며, 급하게 돈을 꿔달라는 아이도 있었다.

이렇듯 내가 느끼기에 친밀감으로 맺어서 진심을 나누는 관계로 보이진 않았고, 돈으로 맺어진 관계처럼 보였다. 혹시 콩고물이라도 떨어지길 바라는 족속들인 걸로 말이다.

"정말? 이걸 나 준다고?"

"응.. 내가 요즘 그걸 별로 안 써... 나랑 안 어울리더라고.. 굳이 안 쓰는 거 집에서 주인없이 방치하는 것보다야 어울리는 사람한테 주는 게 낫지."

"와 정말 고마워! 이거 요즘 나오지도 않는 건데..."

'미친년.. 엄마, 아빠가 저러는 걸 알까?'

딱봐도 비싸보이는 샤넬 백을 친구에게 안 어울린다며 주었다. 내 돈 나가는 것은 아니지만 주는 쪽이나 받는 쪽이나 내 속을 뒤집어댔다.

스스럼없이 아첨하는 애에게 저렇게 주는 일이 많아서 짝퉁일 것이라 의심도 해봤지만, 짝퉁같지는 않았다.

나도 뭐하나 떨어질까 아양을 떨어볼까 하였으나, 그런 걸 남이 알게 되면 그런 가볍고 싼티나는 이미지가 잡힐 거 같아 차마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생각할수록 저 망할년은 무슨 복을 타고 났기에 매일매일 누구나 말하면 아는 브랜드의 명품 옷과 가방을 걸치고 저리 싸돌아다니는지 내 생활환경과 비교되었다. 그것이 영 화가 나고 배가 아팠다.

그러던 어느날이었다. 수업을 들으면서 한번도 본 적 없는 여자아이가 말을 걸어왔다.

"너 윤주가 잘 나가는 게 배 아프니?"

"배가 아프다니?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는데?"

나는 나의 시커먼 속내를 들킨 것 같아 신경쓰였지만 아니라고 잡아뗐다.

"뭐 맞다고는 안 할 줄 알았어.. 믿기지 않겠지만... 나는 누군가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재능이 있거든.. 겉으로 표는 나진 않는데.. 너의 소름끼치는 질투가 느껴져.. 주변에 친구도 많고 집에 돈도 많아보이는 윤주를 질투하는 너가 보인다고.."

"할 말 다 한 거야? 무슨 정신나간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네... 윤주는 윤주의 삶이 있고 나는 나의 삶이 있는 거야.. 그리고 만약의 경우라고 쳐.. 내가 윤주를 질투한다고 손치자고.. 그러면? 윤주한테 이르기라도 하려고? 그런 미친소리를 믿어줄 사람이 있을까 싶다만.."

"잠깐만... 오해하지마.. 나는 그걸 윤주에게 이르겠다는 게 아니라 제안을 하고 싶었어.. 믿져야 본전인 제안이지.. 내 능력을 사용해서 너가 윤주의 삶을 살고 윤주는 너의 삶을 사는 거지. 어때? 아무도 인식하지 못하고 너와 윤주 둘만 인식할 거야. 미친 소리로 들리지? 믿져야 본전이고 손해볼 거 없어보이지?"

무슨 개소리니 싶었지만 장난이라고 셈치고 알겠다고 했다.

"그래.. 해봐.. 어디 한 번.."

"좋아.. 거래는 이뤄졌어.. 이 거래는 구두로도 가능하거든.. 내일 눈을 뜨면 넌 윤주의 인생을 살게 될 거고 윤주는 너의 삶을 살게 될 거야. 안타깝게도 나중에 후회한다고 해도 되돌릴 수 없는 걸 꼭 명심하고."

"글쎄? 그럴 일은 없겠는데? 일단 이게 믿지도 않지만.."

난 믿기지 않았다. 그저 분신사바같은 장난으로 보였지만 자신만만하게 말하는 저 이름 모를 여자아이의 태도에 쥐꼬리만한 기대가 되기도 했다.

왠지 잠이 오지 않아, 남자친구와 핸드폰으로 메시지를 주고 받다가 어느덧 잠이 들었다.

다음날 나를 깨운 것은 알람이 아닌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이었다.

"악!!!!!"

참을 수 없는 고통에 비명을 지르며 눈을 떴다.

눈앞에 펼쳐진 건 허름한 내 방과는 다른 고급스러운 방이었다.

창밖에는 남산을 더불어 한강뷰가 펼쳐졌다.

하지만 망치로 온 몸을 세게 쳐대는 듯한 통증에 그런 것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정말 윤주와 바뀐 것인가.

몸은 나로서 그대로였지만...

메시지라든가 주변에 써있는 모든 것들에 윤주라는 이름의 주기가 되어있었다.

그 장난같고 거짓같았던 제안이 사실이었던 것이다.

윤주의 삶을 물려받으니, 윤주가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기억도 고스란히 내몸으로 들어왔다.

어릴 적부터 항상 병원에 입원하는 것이 너무 당연하다.

주변에는 항상 값비싼 장난감고 입을 것 먹을 것들이 있지만 그것들로 행복한 것은 그 물건을 살 때 그 순간이었다.

그 찰나의 행복은 몸으로 찾아오는 원인 모를 고통에 금세 사라져버렸다.

재벌가의 딸이지만 그 돈으로도 치료하지 못할 고통을 동반하는 불치병에 시달린 것이었다, 윤주는..

"윽.."

윤주의 기억이 공유되어서 나는 자연스럽게 이 통증을 잊게 해줄 마약이 어디있는지도 알고 있었다.

감춰뒀지만 밀수된 마약을 비싼 돈을 주고 샀다.

효과가 큰 만큼 내 몸을 썩게 만들고 신경 구석구석을 마비시켰다.

그래도 마약에 취한 동안은 내 몸이 사라지고 해방된 듯한 느낌을 주었다.

나는 부랴부랴 마약을 입에 넣었다.

물을 마실 시간조차 없었다.

'꿀꺽'

"윤주야!!"

"엄마."

"흑흑.. 또 뭐 사올까? 뭐가 갖고 싶어? 엄마가 백화점가서 얼른 사올게. 이번에 세계에서 10점 밖에 안 나왔다는 백은 이미 예약해뒀어."

"다 필요없어!"

그랬다.

지금까지 윤주가 휘황찬란하게 휘감고 오던 것들은 시한부였던 윤주를 위로하기 위한 윤주 어머니, 아버지의 진통제같은 것일 뿐이었다.

깊어지는 통증에는 옷이 천만원을 하든, 가방이 1억을 하든 무쓸모였다.

그때 전화가 왔다.

"윤주야.. 안녕.. 나 희은야.."

"희.. 희은이?"

희은이는 내 예전이름이었다.

"중요한 건 사는 거더라고... 돈이 많아봤자 쓸 수가 없으면 소용이 없잖아.. 난 돈 원없이 써봐서 지금 내가 중요한 건 건강한 몸이야.. 고마워.. 얼마 남지 않았을텐데.. 다음 생에는 부잣집에서 태어나렴.. 후후훗.. 이렇게 개운하게 자보는 게 얼마만이지? 근데 한가지 일러둘게.. 내가 마약을 샀는데 그 마약 판 애가 저번에 경찰한테 단속됐더라고.. 그래서 조사 나올 수도 있어.. 어차피 곧 죽을 몸이라서 징역도 못 살겠지만 말야.. 그럼 남은 인생 소중하게 살아~"

뭐라고 반박하고 싶었지만 더이상 말을 이을 수가 없는 몸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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