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무서운 이야기, 국내괴담/기묘한이야기

(기묘한이야기) 드라마

by 세모세모뚱이 2023. 4. 21.
728x90
SMALL

[속보입니다. 지구를 향해오는 최근 발견된 소행성의 움직임이 심상치가 않습니다. 각국의 위기관리대응 전문가들이 모여 인류의 존명을 두고 실시하고 있지만, 소행성의 규모가 인류에게는 너무 크기에 마땅한 대책이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과연 유구한 인류의 역사는 이대로 끝나는 걸까요?]
 
곧 지구가 망한다고 한다.
 
이 일은 며칠 전까지만 해도 남의 일이었다. 지구를 향해 소행성이 오고 있다고 하였다. 사람들은 이에 대해 별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한번 흘려듣고 마는 귀신이야기처럼 와닿지 않았다.
 
하지만 하루하루 지날수록 이 일이 생각보다 심각하며 인류의 미래가 위태롭다는 해외전문가들의 인터뷰가 나오자, 언론에서는 그때서야 위험성을 체감하고 이에 대해 보도하기 시작하였다. 무서운 일이 현실이 된다는 사실에 사람들은 공포에 떨었다. 인류가 대응할 수 없는 거대한 재난이 닥쳐오는 상황이었다. 대항할 수도 거역할 수도 없는 그런 거대한 적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아무런 느낌도 받지 않았다. 왜냐하면 내 인생에 그런 어려움은 없었으니까.. 언제나처럼 쉽게 해결될 줄 알았다. 날뛰는 사람들이 수준 낮아 보일뿐이었다.
 
각 종교단체에서는 인류의 종말이 얼마 남지 않았다며, 구원을 받기 위해선 자기들이 모시는 신을 믿어야 한다고 떠들고 다니기 시작했다. 거리에는 방황하는 사람들로 넘쳐났고, 이때를 틈타 거리에는 범죄가 들끓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집안은 언제나처럼 고요하였으며, 교양과 품위가 넘쳤다. 여느 때와 같이 모닝 커피를 마시고 와인을 마시며 남편과 나란히 앉아 나의 유일한 취미인 드라마를 감상했다.
 
"내일 부산으로 출장을 좀 다녀와야겠어. 일주일 정도 예정이니까, 나 보고 싶더라도 조금만 기다려줘, 자기야. 알겠지?"
 
"그런데.. 요즘 뉴스가 심상치 않던데 별일은 없겠지?"
 
"뭐 그런 걸 걱정해. 인류의 기술은 눈부실 정도로 발전했어. 해결될 거야. 언제나처럼 아무일 없을 거고. 언제나처럼..."
 
남편은 언제나처럼 차분한 목소리로 날 대해주었다. 그리고는 내일 출장을 위해 일찍 잠을 청해야 겠다며, 먼저 방에 들어갔다.
 
나는 드라마가 끝난 후, 요즘 시끄러운 소행성의 움직임에 대한 보도가 궁금해져, TV를 뉴스채널로 돌렸다.
 
[소행성의 움직임이 심상치가 않습니다. 이대로라면 이틀 뒤, 인류는 멸종합니다.]
 
뉴스에서는 기자가 더 심각한 목소리로 보도를 했다.
 
언론 보도에 세뇌가 된 것일까? 
 
순간 내 마음 속에 잠자고 있던 불안이 싹을 트더니 내 몸을 타고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뭔가 이대로 나의 세계가 끝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갑자기 의문이 든다. 과연 이게 맞는 것일까?
 
나의 유일한 취미인 드라마 시청...
 
드라마가 재밌는 이유는 사건이 있고 그 사건에 대한 해결이 있어서이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내 인생은 따분하고 지루했다. 남들은 엄친딸이라며, 부럽다며 수근거렸다지만 인생에 아무런 부침도 없었다.
 
이걸 드라마로 치면 어떨까? 누가 보기나 할까? 드라마 속의 주인공에게 위기가 닥치고, 주인공은 그 위기를 극복하면서 성장한다. 그것이 드라마다.
 
유복하게 자라서 아무런 어려움도 모르는 나같은 사람이 과연 드라마 속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을까? 유복한 집안에서 부족한 것없이 자랐다. 학교도 명문 의대에 들어갔다. 아버지가 차려준 병원에서 의사 노릇하며, 남들이 선망하는 대상으로 살고 있다. 얼마전 결혼한 남편은 성공한 사업사에 전도도 유망하다. 재미없다.

내 인생은 왜 이렇게 순탄하기만 한 거지?

사람들은 모두 나를 부러워하지만 근데 과연 좋기만 한 것일까?

이렇게 따분하고 재미없게 살다가 죽는다고?

그.럴.수.는.없.다.

나는 결심을 하고 불이 꺼져 어두워진 부엌으로 향했다. 칼집에서 과도를 빼어들었다. 어둠 속에서 칼날이  달빛을 받아 반짝였다.
 
나는 칼자루를 쥐고 방으로 향했다.

침대 위에는 남편이 온화한 얼굴로 잠을 자고 있다.

나는 잔잔한 호수같기만 한 나의 인생에 나의 의지로 돌을 한번 던져보려고 하였다.

남편은 자는 모습조차 조각같았다. 솜씨좋은 조각가가 빚어놓은 듯 한치의 어색함이 없이 완벽한 얼굴이었다. 외적으로 물적으로 남편도 나처럼 부족함없이 자랐다. 시아버지는 장관을 지내셨으며, 시어머니는 미술대학의 명예교수이자 이름 난 화가이다. 사람들은 남편의 조건이 너무나도 훌륭하여 한눈을 팔 수 있으니 조심하라고 하였지만, 성격조차도 완벽했다. 남편은 누구보다 가정에 충실하였으며, 가족이 일순위였다.
 
이 남편의 숨통을 끊는 것부터가 내 인생에 첫번째 드라마가 될 것이다.
 
굴곡없는 나의 인생에 처음으로 굴곡을 만들어 보고 싶다.

난 과도를 꽉 쥐고 남편의 목을 찔렀다.

“욱…”

남편은 눈을 부릅떴다. 나를 향해 허공에 손을 뻗어보지만, 나에게 닿지 않는다.
 
입을 벌려 뭐라고 말을 하였지만 아무 소리도 나지 않고 들리지도 않는다. 남편의 목에서 피가 분수처럼 터져나왔다. 이윽고, 남편의 몸은 움직임을 멈추었다.
 
"이제야 조금 드라마같아... 한번 사는 인생인데 마네킹처럼 살 수는 없잖아..."

다음은…

난 집에 불을 지르기로 하였다.
 
집 창고에 있던 시너를 꺼내왔다. 난 거실에 시너를 붓고 방에서 이불을 꺼내와 불을 붙였다.
 
곧 유독한 연기와 함께 검은 불이 피어올랐다.
 
"그래.. 이제야 조금 드라마틱하네.. 후후훗"
 
나는 웃음이 났다. 잔잔하기만 하던 호수같던 내 인생이 물결이 치기 시작했다.

집이 활활 타들어 간다.
 
드라마가 점점 절정을 향해 치닫기 시작했다. 나는 극적인 장치를 위해 집밖으로 나와 아파트 복도에 불을 놓았다. 검은 연기가 피고 불 기운이 서서히 퍼지기 시작하자 사람들이 집밖으로 나와 도망치기 시작했다. 난 당황한 사람들에게 천천이 다가가 남편의 인생을 끝낸 과도를 이용해 차례차례 목숨을 거둬갔다.
 
복도에는 피투성이가 된 시체가 수북히 쌓였다. 나는 집으로 돌아가 소파에 앉았다.
 
"이게 인생이구나.."

[뉴스 속보입니다. 속수무책이었단 소행성이 간신히 지구를 빗겨갔습니다.]
 
 
 
정신을 차려보니 난 법정에 서있었다.

"피고에게 사형을 선고한다."
 
'탕, 탕, 탕'
 
 
얼마가 흐른 지 모르겠다.
 
어느날

내 목으로 줄이 감겼고, 난 그 뒤의 일은 기억할 수 없게 되었다.

728x90
LIST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