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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 해외괴담/해외범죄

(해외범죄) 파리 궁정에 퍼진 독살 스캔들의 최종 보스 카트린 몽부아쟁(라 부아쟁)

by 세모세모뚱이 2023. 1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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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14세 치하의 파리...
화려한 의복을 입은 귀족들로 붐비는 궁정에서 독살 스캔들이 터집니다.
1677년에서 1682년 사이 저명한 귀족들의 뒤가 얼마나 구린지 드러나게 된 것입니다.
독살과 흑마술을 사용한 것이죠.
이 스캔들은 루이 14세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고 궁정 내에 만연한 독살 사건의 내막이 발각되며, 36명이 처형되는 결과를 낳습니다.
 
최초의 독살 사건은 1675년이었습니다.
1666년 브랭빌리에 후작 부인이 내연남인 고딘 드 세인트크로이 장군과 공모하여 아버지인 앙투안느 드뢰 드'오브레의 독살을 공모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실패로 끝났는지, 1670년에는 두 형제인 앙투안느 드'오브레, 프랑수아 드'오브레와 아버지를 독살하려고 한 사실이 드러납니다.
이유는 재산 상속이었죠.
그외에도 브랭빌리에가 병원에 가서 독의 효력을 실험하기 위함이었는지 가난한 사람들을 독살했다는 소문이 퍼진 상태였습니다.
 
브랭빌리에는 고발당한 후 도망쳤으나, 곧 잡혔습니다.
고문이 시작됩니다.
"물 치료"라 불리는 고문입니다.
더러움을 씻어낸다는 명목으로 16파인트에 달하는 물을 강제로 마셔야 했습니다.
1파인트는 0.5리터 정도라고 하니까.. 8리터 정도군요..
고문이 가혹했기에 본인이 무슨 짓을 했는지를 실토합니다.
죄가 무거웠기 때문에 사형 선고를 받습니다.
브랭빌리에는 곧 참수되어 불태워졌습니다.
공모자인 세인트크로이는 따로 처벌받진 않았으며 천수를 누르며 1672년까지 살았습니다.
 
이 재판은 시작이었습니다.
지금껏 궁정 곳곳에서 벌어진 의문스러운 죽음들이 독살 사건일지 모른다는 공포가 퍼져나갔습니다.
루이14세도 똑같은 공포를 느꼈겠죠.
 
스캔들의 서막
1677년에 사건이 시작됐습니다.
점쟁이인 마그델렌 드 라 그랑주가 위조죄와 살인죄로 체포된 것입니다.
마그델렌은 심문을 받으면서, 더 무서운 일을 털어놓고 죄를 덜고 싶었는지 새로운 정보를 까발립니다.
그러면서 궁정에 퍼진 더러운 독살 사건의 내막이 드러납니다.
 
배후에는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이름: 카트린 몽부아쟁(Catherine Monvoisin 또는 Montvoisin)
별칭: 라 부아쟁(La Voisin)
국적: 프랑스
출생: 1640년
사망: 1680년 2월 22일(프랑스 파리에서 처형됨)
직업: 점쟁이, 마녀, 독연구가
피해자: 1,000~2,500명(추정)
 
카트린은 프랑스의 점쟁이이자 독연구가였으며, 마녀였습니다.
카트린은 파리 점쟁이 네트워크의 대표였는데 여기에서는 독이나 최음제, 낙태같은 서비스(?)를 제공했습니다.
그 밖에는 마술을 부리거나 악마숭배의식 같은 것도 행했죠.
카트린의 고객 중에는 높은 귀족들도 있었습니다.
카트린은 프랑스의 독살 스캔들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카트린이 저지른 흑마술과 독의 피해자는 천명 이상으로 추정됩니다.
최대로는 2,500명에 달한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일생
카트린이 어린 시절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습니다.
카트린은 어릴 적부터 점을 보는 법을 배웠고, 후에 앙투안느 몽부아쟁과 결혼합니다.
남편은 앙투안느는 파리의 퐁마리에서 보석과 비단을 팔았습니다.
 
그러다가 남편의 사업이 망하자, 카트린은 손금이나 관상을 봐주며 생계를 꾸리게 됩니다.
또한 점쟁이로서 산파 활동도 겸했습니다.
나아가 낙태 서비스도 제공했습니다.
카트린의 신통력이 꽤 뛰어났는지 유명세를 타게 되죠.
그 밖에도 마술용품이나 묘약 등을 만들어 팔았고 악마숭배의식을 주관하거나 최음제, 독약 같은 것도 팔게 됩니다.
 
1660년대 후반이 되자 카트린은 부자가 됩니다.
그리고 프랑스 고위 귀족들 사이까지 카트린의 이름이 알려집니다.
카트린의 고객 중에서는 올림피아 만치니 수아송 백작부인, 마리 안 만치니 부용 공작부인, 엘리자베스 그라몽 백작부인, 프랑수아 앙리 드 몽모랑시 피네 뤽상부르 공작 등 내로라하는 귀족들도 있었습니다.
*이름이 불어라서 정확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카트린은 점집은 특별 서비스도 제공했습니다.
파리 상류 계층 인간들을 자기네 정원에 모셔두고 바이올린 연주 등의 고급 향응을 제공하였습니다.
카트린은 주기적으로 파리대학의 학장이자 얀센파 교회의 수도원장인 생 아모르의 교회 예배도 참석했습니다.
귀족들과의 사적인 친분도 두터워서 카트린의 딸의 대모는 귀족여성이었던 라 로슈 기욘 부인이었습니다.
 
카트린은 남편과 친정엄마, 애들까지 총 여섯의 식구의 생계를 책임졌죠.
하지만 가정적인 것은 아니었던 듯합니다.
최소 6명의 애인이 있었죠.
앙드레 기욤,  쿠세랑 자작이자 라바띠 백작인 므슈 라투르, 화학자 블레시스, 건축가 포셰트, 마술사 아담 르사주 등이 있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아담은 카트린에게 남편을 죽여버리라고 꼬셔댑니다.
카트린은 처음에 이 말에 혹하는 듯했으나, 마음을 바꿉니다.
 
카트린은 과학과 연금술에 관심이 있었고 축적한 부를 기반으로 개인의 사업이나 기업체에 자금을 대기도 했습니다.
일부 사기 예술가들은 카트린이 돈이 많다는 것을 알고 사기를 치려고 하기도 했습니다.
카트린은 알콜중독에 시달렸으며, 라투르에게 학대를 당했다고 합니다.
당대 독약에 있어서 라이벌이었던 마리 보쓰와 갈등을 빗기도 했습니다.
 
낙태 알선
카트린은 당대에 불법이었던 낙태 알선도 하였습니다.
산파 활동과 겸해서 하던 서비스였습니다.
카트린의 낙태 고객 중에서는 부유한 귀족들도 많았죠.
조직은 꽤 체계적이었습니다.
전문 낙태꾼인 카트린 르페르에게 낙태를 원하는 사람을 공급하는 역할 이었습니다.
 
카트린의 라이벌 마리 보쓰는 카트린이 낙태한 태아를 집 벽난로에서 불태워 정원에 묻었다고 주장했습니다.
루이14세는 카트린의 기업 중 낙태 관련 부분에 대해 더이상 있어선 안 된다며 명령을 내렸습니다.
이리하여 사업이 조사를 받게 됩니다.
하지만 마리 보쓰가 고발한 다른 것들은 사실인지 확인되지 않게 됩니다.
 
신통력
카트린이 얘기하길 점쟁이로서 본인이 가진 능력은 신이 주신 것이고 그것을 사용하면서 발전시킨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능력은 9살의 나이부터 배운 것입니다.
관상과 손금을 보면서 고객들의 미래를 읽어냈죠.
다만, 카트린이 많은 고객들을 모을 수 있었던 것은 순수하게 신통력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현대에서 심리학으로 일컬어지는 방법을 익혀서 마치 그것이 신통력에 의한 능력인 것마냥 잘 포장하였던 것입니다.
카트린은 수완이 좋았는지 인테리어에도 신경을 썼습니다.
인테리어는 자신의 말이 더욱 설득력있게 느껴질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었죠.
예를 들자면 진홍 벨벳으로 된 로브를 뒤집어 쓰고 거기에는 금으로 만든 독수리를 달아놓는 등의 것들이었죠.
 
1665년 또는 1666년 쯤이었습니다.
카트린의 예지력이 성 바울 교단의 신도들에게 테스트를 받게 됩니다.
카트린은 소르본 대학 교수들 앞에서 성공적으로 변호에 성공하게 되고 점쟁이로서의 일을 계속 할 수 있게 됩니다.
 
흑마술
카트린의 점술 사업은 점차 전문적인 흑마술 사업으로 발전합니다.
점쟁이로 활동하면서 카트린은 고객들이 미래에 대해 궁금하다는 점이 상당히 비슷하다는 걸 알게 되죠.
대부분의 인간들은 누군가가 자기를 좋아했으면 하고 바라고 있었습니다.
또 누군가는 재산을 독차지하기 위해 특정한 사람이 뒈지기를 기도했죠.
자기 배우자가 죽기를 바라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러면 자기의 새로운 애인과 결혼할 수 있으니까요.
 
카트린은 돈 잘 굴리는 머리가 돌아갑니다.
몇가지 서비스를 제공해서 소원이 이뤄지도록 하는 것입니다.
처음에 카트린은 고객들에게 신의 뜻이 맞다면 소원이 들어질 것이라고 말합니다.
두번째로 카트린은 고객들에게 몇가지 방법을 일러주는데 그렇게 하면 소원이 이뤄질 것이라고 귀띔해줍니다.
이 방법이라는 것은 처음에는 교회에 가서 열심히 기도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이게 점점 돈줄이 될 거 같으니까 점점 물질적인 것으로 바뀝니다.
부적장사죠.
이렇게 마법의 힘이 담긴 물건을 팔거나 악마숭배의식을 행하는 것을 대가로 돈을 받게 됩니다.
 
일부 짝사랑에 빠진 고객들은 상대방이 자기를 좋아하게 해달라고 하였습니다.
카트린은 사랑의 가루를 만들어냈죠.
두꺼비의 뼈와 두더지의 이빨, 그리고 스페인청가뢰라는 특이한 딱정벌레, 쇳가루, 인간의 피, 그리고 미라, 사람뼈 등을 써서 만들었다고 하면서 팔았습니다.
사실인지는 모르겠습니다.
 
효과가 가장 확실한 것은 악마숭배의식이었는데, 돈이 많이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카트린은 고객들에게 고액의 의식을 치러주었습니다.
소원이 이뤄질 것이니 사탄에게 기도하라는 것이었죠.
의식이 치러질 동안 카트린은 한 여성을 인간 제단으로 눕히고 그 위에다가 그릇을 놓습니다.
그릇 위로 아기를 들고 섭니다.
아기의 피가 그릇에 떨어집니다.
이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아기는 의식 중에 살해된 것인지 아니면 사산된 아기인지 알 길은 없었습니다.
 
카트린은 여러 보조를 데리고 있었는데 이들은 의식을 치르거나 기타 서비스(?)를 도왔습니다.
애인이기도 했던 아담 르사주와, 성직자 에티엔느, 수도원장 매리어트 등이 악마숭배의식을 열심히 거들었습니다.
 
적당히 신기하고 기묘한 물건을 팔고 의식으로 돈을 벌던 카트린은 이제 최음제를 팔기 시작합니다.
이것은 사랑의 묘약이라는 이름으로 팔려나갔습니다.
 
누군가가 뒤졌으면 하고 바라는 사람들에게는 독약을 팔았습니다.
 
카트린이 파는 독약이 날로 효과가 업그레이드됩니다.
이미 독약은 10몇년 전 이탈리아 독살 전문가인 줄리아 토파나에 의해서 많이 발전한 상태였습니다.
남편이 꼴도 보기 싫어진 부인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죠.
카트린은 독약을 좀 더 개선합니다.
카트린 독약이 인기를 끕니다.
카트린은 고객들에게 많은 독을 팔아먹으면서, 독제조사 네트워크를 만들죠.
대표적인 인물로 약제상인 카트린 트리아농이 있습니다.
 
몽테스팡 부인과의 접점

몽테스팡 부인

몽테스팡 부인은 카트린의 주요 고객 중 하나였습니다.
몽테스팡 부인은 루이14세의 로얄 미스트리스(정부) 즉 애첩이었죠.
이 둘의 연락은 보통 몽테스팡 부인의 친구였던, 또다른 루이14세의 애첩인 클로드 드 빈 드 외이예를 통해 이뤄졌습니다.
몽테스팡은 악마숭배의식을 위해 카트린을 고용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 의식은 타느리 가의 한 저택에서 행해졌습니다.
아담 르사주와 수도원장 매리어트가 거들었습니다.
그동안 몽테스팡은 왕의 사랑을 얻기위한 기도를 올리고 있었습니다.
우연인지 정말 기도빨인지 몽스테팡은 왕의 공식 정부인 로얄 미스트리스에 등극합니다.
이 일로 몽테스팡은 카트린의 신통력을 절대적으로 믿게 되었고, 왕과 트러블이 생길 때마다 카트린을 호출합니다.
 
하지만 몽테스팡의 아름다움이 점점 시들어갔습니다.
왕 주변에는 항상 여자가 들끓었기에 루이14세가 몽테스팡을 계속 사랑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곧 몽테스팡에 대한 왕의 사랑이 점점 식었습니다.
조급해진 몽테스팡은 카트린을 호출합니다.

제단이 된 몽테스팡

 
"왕이 더 이상 날 사랑하지 않는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의식을 치르면 될 것입니다. 악마께 더 치성으로 기도를 드려야죠."
 
또 다시 왕의 사랑을 되돌리기 위한 의식이 열립니다.
이번에는 의식의 효과를 증폭시키기 위해 성직자 에티엔느 기브르의 보조 아래 진행됩니다.
몽테스팡은 의식의 효험을 높이기 위해 나체로 인간 제단이 됩니다.
 
"폐하께, 이걸 먹이세요. 다시 사랑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카트린은 몽테스팡에게 최음제를 처방하고 몽테스팡은 왕에게 그걸 먹입니다.
그때 왕은 수비즈 부인에게 빠져있을 때였습니다.
 
 
처절해진 몽테스팡은 왕이 자기를 버릴 경우에 왕을 죽여버리기로 합니다.
1679년 왕은 안젤리크 퐁타주 부인이라는 새로운 여성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몽테스팡 부인은 개빡쳤고 당장 카트린을 호출합니다.
 
"더 이상 못 참겠어. 왕도 그 여자도 다 죽이겠어."
 
"흠...."
 
몽테스팡은 분노에 치를 떨며 이성을 잃은 듯 했습니다.
카트린은 보통 사람도 아니고 왕을 죽인다는 게 영 마음에 걸렸으나, 결국 동의합니다.
카트린은 동료였던 카트린(이름이 같습니다) 트리아농, 베르트랑, 그리고 딸의 약혼남인 로마니 등의 도움을 받아서 왕 독살이라는 대역죄를 모의합니다.
트리아농은 솔직히 안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카트린에게 접자고 하죠.
하지만 카트린의 마음은 확고했습니다.
결국 루이14세를 죽여버리기로 합니다.
이미 많은 사람이 자기 독에 쓰러졌는데 왕 그까짓 것이라는 마음이었을까요?
왕을 어떻게 중독시킬지를 궁리해봅니다.
왕은 하루에 청원서를 읽어야 하므로, 거기에 묻히면 될 듯 했습니다.
독이 묻은 청원서를 손으로 들게 되면 왕은 중독되어 사망할 것입니다.
 
1679년 3월 5일
카트린을 생제르맹에 있는 궁정에 방문합니다.
독이 묻은 청원서를 들고 말입니다.
그러나 재수없게도 그날 청원을 하려는 인간이 너무 많았습니다.
독살 계획은 물거품이 되어버립니다.
계획은 망했죠.
카트린은 집으로 복귀합니다.
가자마자 수도승들에게 욕을 잔뜩 먹습니다.
(왜 먹는지는 모르겠지만 계획이 실패해서 그런 듯 합니다.)
카트린은 딸인 마르그리트 몽부아쟁에게 청원서를 전달한 후 태워없애라고 합니다.
그리고 다음날 새로운 계획을 세우죠.
트리아농 집에 방문하여 루이14세의 명줄을 끊어버릴 다음 계획을 모의합니다.
 
체포
왕의 계수였던 오를레앙 공작부인이 사망하는데 이게 독살로 사망한 것이라는 오해가 생깁니다.
가장 처음 언급했던 사건이죠.
1676년 독살 모의로 처형된 브랭릴리에 후작부인과 그 공범들은 여전히 대중들의 기억 속에서 생생했습니다.
동시에 폭동이 발생합니다.
폭동들은 사람들은 마녀들이 아이들을 악마숭배의식에 제물로 삼으려고 납치한다고 고발하였습니다.
신부들은 고해성사에서 많은 사람들이 독살 모의를 자백했다고도 이야기 했습니다.
 
1677년 점쟁이 마그델렌 라 그랑주가 체포됩니다.
죄목은 독살이었습니다.
마그델렌은 자기가 굉장히 중요한 범죄에 관한 정보를 알고 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마그델렌의 자백에 따른 또 다른 점쟁이인 매리 보쓰와 매리 비고로가 1679년 1월에 체포됩니다.
그러면서 경찰이 밝힌 사실은 독을 퍼뜨려대는 거대한 점쟁이 조직이 파리 내에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1679년 3월 12일
조직 대빵인 카트린이 노트르담에서 체포됩니다.
트리아농을 만나기 전 예배에 갔다가 체포됩니다.
 
1679년 4월
독살된 사람을 조사하고 범죄자를 기소할 위원단이 만들어집니다.
 
조사와 재판
카트린은 체포 당시 하녀였던 마고에게 자기가 체포되면 사회 각계 각층 사람들이 끝장날 것이라고 얘기했습니다.
카트린은 뱅센에 수감됩니다.
거기서 심문을 받게 됩니다.
1679년 12월 27일 루이14세는 명령을 내려서 이 조직이 소탕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무슨 수단을 써서라도 지위고하 성별, 나이를 막론하고 말이죠.
엄마가 체포되자 딸인 마르그리트 몽부아쟁도 체포되었습니다.
차례로 성직자 에트엔느 기르버그, 아담 르사주, 베르트랑, 로마니 그외 관련있는 인간들이 체포되었죠.
 
카트린은 당연 고문 당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생각보다 카트린의 심문은 가볍게 진행됐습니다.
카트린은 고문을 당한 적이 없습니다.
통상적으로 고문의 사용이 허용되었음에도 적용되지 아니하였죠.
이유가 있었습니다.
카트린이 고문을 당할 경우 사회에서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언급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에 위에서 쉬쉬한 것입니다.
카트린은 위에서 나왔듯 알콜중독자였습니다.
조사 동안에 알콜 섭취를 막지도 않았어서 카트린은 조사 동안에 계속 고주망태 상태였습니다.
심문은 지지부진하게 진행됩니다.
 
오히려 공범들과의 대면이 효과가 있었습니다.
아담 르사주, 매리 보쓰 등이었죠.
처음 카트린은 독을 판 것은 매리 보쓰라고 하였죠.
그러다가 귀족인 마르그리트 레퍼론과 프랑수아 드뢰의 이름이 나왔습니다.
결국 같은 해 10월 10일 카트린을 독과 마술 서비스를 궁정 귀족들에게 팔아먹었음을 시인했습니다.
거기에 더해 자기 사업이 어떤 식으로 발전했는지에 대해서도 줄줄이 서술하였습니다.
 
대신 카트린은 몽테스팡 부인을 본 적도 없고 서비스를 제공한 적도 없다고 잡아뗐습니다.
카트린이 인정한 것은 파리에는 이런 일이 비일비재해서 고객 수를 헤아릴 수가 없다고 말입니다.
그러면서 다른 고객의 이름은 대지 않았고, 악마숭배의식에 참여했다는 사실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카르린은 궁정에 왔다갔다한 적이 있었는데 이 사실이 감춰지길 바랐습니다.
이 사실이 발각되면 몽테스팡 부인을 만난 것이 드러날 것이고 더 나아가 왕을 시해하려던 계획을 들킬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죠.
결국 국왕을 시해하려던 죄로 처형당하게 될 것입니다.
악마숭배의식을 행한 고객 리스트, 그리고 몽테스팡 부인과의 교착점, 국왕암살 계획은 다행히(?) 카트린이 사망할 때까지 드러나진 않았습니다.
카트린 사후, 추가 조사에 의해 카트린이 딸이 토설해서였고, 공범들이 까발렸기 때문이었죠.
 
독살 의혹 외에 카트린은 당시 불법이던 일들을 은밀히 자행하고 있었습니다.
낙태한 아이들을 정원에 매장한다는 의혹이 있었는데, 없던 일이라 잡아뗐습니다.
뼈 처리를 위해 오븐에 태웠다는 제보가 있었는데 없었던 일이라고 잡아뗐습니다.
이런 의혹이 나온 것은 태아들을 집 정원에 묻기에는 너무 많았기 때문이었죠.
그리고 독을 사용한 적도 없다고 했습니다.
본인이나 가족들이 사용할 설사약 정도만 가지고 있었을 뿐이라고 둘러댔습니다.
낙태약 주입의혹도 부인하였습니다.
 
재판과 처형
1680년 2월 17일 카트린은 본인이 연루된 사건들에 대해 적극적으로 부인하였습디만... 마술을 쓴 죄로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 받고 이틀 뒤에 화형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카트린은 억울했는지 처형받으러 가는 길에 성직자를 밀치기도 하고 말뚝에 매어졌을 때 발 밑에 깔린 불을 지피기 위한 짚을 필사적으로 발로 차댔습니다.
 
7월입니다.
 
카트린은 사망했지만, 조사는 계속되고 있었죠.
 
카트린의 딸인 마르그리트 몽부아쟁은 카트린이 몽테스팡 부인과 만난 적이 있다고 사실을 털어놓았고, 다른 공범들의 진술로 사실로 확인되었습니다.
이것으로 궁정에서는 조사를 중단하고 관련자들을 체포영장을 가지고 감방에 쳐넣고 끝났습니다.
 
피해자가 적게는 1,000명에서 크게는 2,500명에 달하는 끔찍 독살 스캔들의 결말이었습니다.
 
La Voisin - Wikipedia

La Voisin - Wikipedia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French fortune teller and poisoner Catherine MontvoisinCatherine Deshayes, "La Voisin", 17th-century print of her portrait held by a winged devil.Bornc. 1640Catherine DeshayesDied22 February 1680 (aged 39–40)Paris,

en.wikipedia.org

Affair of the Poisons - Wikipedia

Affair of the Poisons - Wikipedia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17th century murder scandal in France Catherine Deshayes, "La Voisin", 17th-century print of her portrait held by a winged devil. Gabriel Nicolas de la Reynie (1625–1709), 17th century print by Mignard. Marie Madelei

en.wikipedi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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